서울 상도동 반야선사라는 절에서 세계 각국 승려
(世界各國僧侶)들이 계(戒) 살림을 한다고 한국 대표로
나를 청하러 왔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보고 계를 설(說)하라고 하기에 나는
율문(律文)을 보지 아니하므로 육조(六祖) 스님의 단경
(檀經)을 보고 육조 스님의 법문(法文)을 설하였다.
육조 혜능(慧能)이 의발(衣鉢)을 지니고 삼경(三更)에
떠나오는데 오조(五祖)가 친히 구강역(口江驛)에까지
배웅을 나왔다가 배에 오르자 오조가 또 손수 노를
저으려 하였다. 그래서 혜능이 오조에게
"스님, 제가 노를 젓겠습니다. 스님은 앉아 계십시오."
하였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네 주리라."
"아니올시다. 제가 모를 때에는 스님께서 저를 건네
주었지마는, 이제는 제가 알았으니,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하나이다. 건넨다는 말은 하나이오나,
쓰이는 경우가 다른가 하나이다."
"그렇다. 앞으로는 불법(佛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떨치리라."
하였으니, 이 쓰이는 경우란 어떤 것인가? 이 쓰이는
한 마디에 단경(檀經)의 대의(大意)가 다 들어 있으니,
대중은 잘 살펴야 한다.
만일 나에게 쓰는 경우를 묻는다면, (그 쓰는 경우를
파설(破說)은 절대 못하나) 그 쓰이는 경우와 똑같은
비유로써
水不離波요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波不離水로다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다.
라고 하겠다. 그 이르는 법은 털끝만큼도 틈이 없이
이르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 사암넷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4-12 14:18)
(世界各國僧侶)들이 계(戒) 살림을 한다고 한국 대표로
나를 청하러 왔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보고 계를 설(說)하라고 하기에 나는
율문(律文)을 보지 아니하므로 육조(六祖) 스님의 단경
(檀經)을 보고 육조 스님의 법문(法文)을 설하였다.
육조 혜능(慧能)이 의발(衣鉢)을 지니고 삼경(三更)에
떠나오는데 오조(五祖)가 친히 구강역(口江驛)에까지
배웅을 나왔다가 배에 오르자 오조가 또 손수 노를
저으려 하였다. 그래서 혜능이 오조에게
"스님, 제가 노를 젓겠습니다. 스님은 앉아 계십시오."
하였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네 주리라."
"아니올시다. 제가 모를 때에는 스님께서 저를 건네
주었지마는, 이제는 제가 알았으니,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하나이다. 건넨다는 말은 하나이오나,
쓰이는 경우가 다른가 하나이다."
"그렇다. 앞으로는 불법(佛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떨치리라."
하였으니, 이 쓰이는 경우란 어떤 것인가? 이 쓰이는
한 마디에 단경(檀經)의 대의(大意)가 다 들어 있으니,
대중은 잘 살펴야 한다.
만일 나에게 쓰는 경우를 묻는다면, (그 쓰는 경우를
파설(破說)은 절대 못하나) 그 쓰이는 경우와 똑같은
비유로써
水不離波요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波不離水로다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한다.
라고 하겠다. 그 이르는 법은 털끝만큼도 틈이 없이
이르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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